우리나라의 댐
우리 나라의 댐 벼농사 짓던 우리 조상… 일찌감치 물관리 눈떠
우리 나라의 여름철은 대표적인 우기(雨期)라고 할 수 있겠지요. 6월에서 9월 사이에 내리는 비의 양이 1 년 전체 강수량의 3분의 2나 되니까요. 그래서 매년 장마철이 되면 강이나 하천이 넘쳐 농경지가 침수되고, 도로나 다리가 끊기기도 합니다. 특히 집중 호우로 인한 산사태는 가옥을 덮치고 교통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많은 목숨이 희생되고 작년에 2조 원, 올해만 해도 4조 원이 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비 피해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재해를 막고 지혜롭게 물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 하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고민을 해 왔습니다. 그 결과 댐이나 저수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벽골제 수문의 정면과(왼쪽) 뒤쪽 모습(오른쪽). 아래 사진은 현재 남아 있는 벽골제 저수지(왼쪽)와 수문(오른쪽).
오늘은 댐이란 무엇인가 알아 보기로 해요.
댐(dam)이란 물의 흐름을 막고, 그 고인 물을 활용하기 위해 강이나 하천을 가로질러 쌓아 놓은 둑을 말합니다. 주로 흙, 모래, 자갈, 목재, 암석, 철재와 콘크리트를 재료로 쌓지요.
사람들은 댐을 만들어 놓은 다음 식수와 생활 용수, 그리고 농업용 관개 용수 및 각종 산업 시설에서 쓰이는 공업 용수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었답니다. 또한 장마철에 홍수를 조절하거나 가뭄을 극복할 수 있고, 수력 발전을 통한 전기 공급까지 받게 됨으로써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역사가 깊은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저수지를 만들고 어떻게 물을 관리해 왔을까요?
◈ 고대 및 삼국 시대
고대 유적을 통해 볼 때 우리 나라에서 벼농사 중심의 농업 활동이 시작된 것은 기원전 4∼3세기 경입니다. 벼농사를 위해서는 물의 공급이 필수적이지요.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상당한 정도의 제방과 수리 시설의 건설이 이뤄졌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지요.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 시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삼국사기'에는 제방과 저수 시설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에도 4세기 말 백제의 수리ㆍ토목 기술이 일본에까지 전파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댐은 서기 330년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김제의 벽골제입니다. 벽골제는 축조된 이래 1925년까지 1600 년 동안 여러 차례 개수를 거듭해 왔는데, 1415년 수리하면서 세운 비석에 따르면 제방의 길이가 3240 m, 둘레는 약 140 im로 약 3240 ha를 관개할 수 있는 큰 규모였답니다.
지금 벽골제에는 2500 m의 제방과 석재로 된 2 개의 수문만이 남아 있는데 각 수문에는 2 개의 커다란 돌기둥이 마주 서 있고, 그 안쪽면에는 너비 20 cm, 깊이 12 cm의 홈이 위에서 아래까지 파여 있어서 이 홈에 목판을 끼워 넣고 상하로 움직여 방류량을 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수문의 바닥에는 정방형의 큰 돌을 다듬어 깔아서 물이 방류될 때 바닥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시설이지요.
또한 백제가 건설한 전북 익산의 황등제와 정읍의 눌제도 있어요. 그런데 이 댐들은 문헌상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 형태와 기능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라는 충북 제천에 의림지와 경북 의성의 대제지, 경남 밀양의 수산지 등을 건설하였다는 기록과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뒤 후삼국 시대에는 충남 당진에 합덕제를 건냘杉쨉?1964년까지도 그 형태와 기능이 유지되었지요.
◈ 고려 시대
고려는 농업 활동을 매우 중히 여기는 중농 정책과 토지의 국유제를 실시하였답니다. 이에 따라 가뭄과 홍수 피해의 방지, 용수원 확보를 위해 제방의 신축과 보수가 왕성하게 이뤄졌어요. 이 시기에 축조된 가장 대표적인 댐이 경북 상주의 공검지로서 영남 최대 규모의 저수지였습니다. 이것은 1959년까지도 그 기능이 유지되었지요.
◈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도 중농 정책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논에 모내기(이앙)를 하는 농법이 발달했는데 이에 따라 효율적인 물 관리가 필요했지요. 강우와 하천 유량의 관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답니다. 수리ㆍ토목 공사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대규모 댐과 제방의 축조,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지요.
우리 나라의 여름철은 대표적인 우기(雨期)라고 할 수 있겠지요. 6월에서 9월 사이에 내리는 비의 양이 1 년 전체 강수량의 3분의 2나 되니까요. 그래서 매년 장마철이 되면 강이나 하천이 넘쳐 농경지가 침수되고, 도로나 다리가 끊기기도 합니다. 특히 집중 호우로 인한 산사태는 가옥을 덮치고 교통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많은 목숨이 희생되고 작년에 2조 원, 올해만 해도 4조 원이 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비 피해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재해를 막고 지혜롭게 물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 하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고민을 해 왔습니다. 그 결과 댐이나 저수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벽골제 수문의 정면과(왼쪽) 뒤쪽 모습(오른쪽). 아래 사진은 현재 남아 있는 벽골제 저수지(왼쪽)와 수문(오른쪽).
오늘은 댐이란 무엇인가 알아 보기로 해요.
댐(dam)이란 물의 흐름을 막고, 그 고인 물을 활용하기 위해 강이나 하천을 가로질러 쌓아 놓은 둑을 말합니다. 주로 흙, 모래, 자갈, 목재, 암석, 철재와 콘크리트를 재료로 쌓지요.
사람들은 댐을 만들어 놓은 다음 식수와 생활 용수, 그리고 농업용 관개 용수 및 각종 산업 시설에서 쓰이는 공업 용수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었답니다. 또한 장마철에 홍수를 조절하거나 가뭄을 극복할 수 있고, 수력 발전을 통한 전기 공급까지 받게 됨으로써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역사가 깊은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저수지를 만들고 어떻게 물을 관리해 왔을까요?
◈ 고대 및 삼국 시대
고대 유적을 통해 볼 때 우리 나라에서 벼농사 중심의 농업 활동이 시작된 것은 기원전 4∼3세기 경입니다. 벼농사를 위해서는 물의 공급이 필수적이지요.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상당한 정도의 제방과 수리 시설의 건설이 이뤄졌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지요.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 시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삼국사기'에는 제방과 저수 시설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에도 4세기 말 백제의 수리ㆍ토목 기술이 일본에까지 전파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댐은 서기 330년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김제의 벽골제입니다. 벽골제는 축조된 이래 1925년까지 1600 년 동안 여러 차례 개수를 거듭해 왔는데, 1415년 수리하면서 세운 비석에 따르면 제방의 길이가 3240 m, 둘레는 약 140 im로 약 3240 ha를 관개할 수 있는 큰 규모였답니다.
지금 벽골제에는 2500 m의 제방과 석재로 된 2 개의 수문만이 남아 있는데 각 수문에는 2 개의 커다란 돌기둥이 마주 서 있고, 그 안쪽면에는 너비 20 cm, 깊이 12 cm의 홈이 위에서 아래까지 파여 있어서 이 홈에 목판을 끼워 넣고 상하로 움직여 방류량을 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수문의 바닥에는 정방형의 큰 돌을 다듬어 깔아서 물이 방류될 때 바닥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시설이지요.
또한 백제가 건설한 전북 익산의 황등제와 정읍의 눌제도 있어요. 그런데 이 댐들은 문헌상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 형태와 기능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라는 충북 제천에 의림지와 경북 의성의 대제지, 경남 밀양의 수산지 등을 건설하였다는 기록과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뒤 후삼국 시대에는 충남 당진에 합덕제를 건냘杉쨉?1964년까지도 그 형태와 기능이 유지되었지요.

고려는 농업 활동을 매우 중히 여기는 중농 정책과 토지의 국유제를 실시하였답니다. 이에 따라 가뭄과 홍수 피해의 방지, 용수원 확보를 위해 제방의 신축과 보수가 왕성하게 이뤄졌어요. 이 시기에 축조된 가장 대표적인 댐이 경북 상주의 공검지로서 영남 최대 규모의 저수지였습니다. 이것은 1959년까지도 그 기능이 유지되었지요.
◈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도 중농 정책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논에 모내기(이앙)를 하는 농법이 발달했는데 이에 따라 효율적인 물 관리가 필요했지요. 강우와 하천 유량의 관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답니다. 수리ㆍ토목 공사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대규모 댐과 제방의 축조,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지요.
1441년 제작된 내린 비의 양을 재는 측우기(사진 위)와저수?하천의 수위를 재는 수표.
조선 왕조 초기인 1395년에 댐과 제방을 축조하고 보수 공사를 독려하기 위하여 권농관(勸農官) 제도를 두었고, 1419년에는 제언대장(堤堰臺帳)을 2 부씩 만들어 비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댐 시설의 신설, 조사, 수리를 관장하는 제언사(堤堰司)라는 기관도 창설하였습니다. 1662년에는 최초로 댐에 대한 규정인 제언사목(堤堰事目)을 발표하였고, 1778년(정조 2년)에는 전문과 각 11조로 되어 있는 제언절목(堤堰節目)을 공포하는 등 관련 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졌지요.
이쯤 되면 우리 조상들이 물 관리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현대에 들어와서 댐 건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 조상들이 물 관리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현대에 들어와서 댐 건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라벨: 재미있는 수자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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